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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리쿰(Tillikum), 세상을 바꾼 혹은 바뀌는 세상의 한 가운데에 있었던 범고래 본문

고래(Whales)

틸리쿰(Tillikum), 세상을 바꾼 혹은 바뀌는 세상의 한 가운데에 있었던 범고래

sealover 2016. 3. 20. 15:59

아마 지금까지 가장 유명한 범고래는 영화 프리윌리에 출연했던 케이코(Keiko)였다고 생각합니다. 케이코에 대한 이야기는 제 블로그 『범고래 이야기, Keiko, Shamu...』에 조금 나와 있습니다. 


이제는 가장 유명한 범고래가 틸리쿰(Tilikum)으로 바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Tilikum at SeaWorld Orlando (2009)[각주:1]>


2016.3.9. 씨월드(SeaWorld)는 35살 수컷 범고래 틸리쿰이 치료가 불가능한 슈퍼 박테리아에 감염되어 곧 생을 마감할 것이라고 발표했고[각주:2], 곧 이어 3.17. 범고래 인공번식과 공연을 중단한다고 발표했습니다[각주:3]. [틸리쿰은 2017.1.6. 생을 마감했다[각주:4].] 


틸리쿰이라는 이름이 생소할지라도 2010년 씨월드의 범고래 공연 도중 조련사를 살해했고, 이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블랙피시(Blackfish)」의 주인공이라고 하면 그나마 아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네요. 


씨월드는 여러 차례 범고래 공연을 중단하라는 목소리에 직면하고서도 공연을 계속해 왔지만 틸리쿰과 관련된 여러가지 사건들의 파장이 계속 커지면서 결국 공연 중단을 결정하면서, 앞으로는 동물복지단체인 휴메인 쏘사이어티(the Humane Society)와 연계하여 해양포유동물 구조, 치료 활동을 확대하겠다고 합니다. 물론 전 세계의 동물복지 단체들은 큰 환영의 뜻을 나타냈고 미국 언론들도 중요한 뉴스로 다루었습니다. 


돈벌이가 잘 되고 있는 사업을 윤리적 문제 때문에 갑자기 접은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막다른 골목에 물려서 어쩔 수 없이 내려야 하는 결정을 사업가의 기질을 발휘하여 멋지게 포장한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틸리쿰의 인생을 한번 훑어보고 여러분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해 보시기 바랍니다. 


역사상 가장 많은 범고래를 생포하여 수족관에 팔아넘긴 골즈베리(Don Goldsberry)라는 사냥꾼이 1983년 11월 아이슬랜드 근해에서 2살 무렵의 틸리쿰을 잡아서 1년 동안 레이캬비크의 좁은 수족관에 가뒀다가, 1984년에 캐나다 BC주 빅토리아의 씨랜드(Sealand of the Pacific)라는 수족관에 팝니다. 여기서 치누크 인디언의 말로 친구라는 의미를 가진 틸리쿰이라는 이름을 지어줍니다.


씨랜드는 Haida라는 1968년에 잡힌 범고래를 수용하면서 1969년에 문을 열었는데, 틸리쿰이 도착할 때까지 7마리의 범고래가 이런저런 이유로 사망했던 곳입니다. 전체적으로 시설이 열악했고 야간에는 좁은 공간에 3마리의 범고래를 몰아넣어서 다 자란 암컷 두 마리가 틸리쿰을 무척 괴롭혔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1991년 2월 20일 Keltie Byrne이라는 견습 조련사(part-time trainer)가 실수로 물에 빠졌는데, 세 마리의 범고래가 번갈아 그녀를 물 속으로 잡아당겨서[각주:5], 다른 조련사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결국 익사하고 맙니다. 이 일로 씨랜드는 1992년 11월에 문을 닫고 세 마리의 범고래는 씨월드로 팔려갑니다.


씨월드의 조련사들이 범고래 훈련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 (사람에 대한) 무관심화 훈련(Desensitization)입니다. 범고래가 있는 풀에 사람이 들어가는 상황을 계속 연출하면 범고래가 그런 상황에 서서히 적응하게 되면서, 처음에는 조련사를, 마지막에는 어떤 사람이 풀에 들어와도 무관심해지는 단계에 이르도록 하는 겁니다. 이런 훈련에도 불구하고 씨월드의 조련사들은 동물을 대할 때 어떤 경우라도 편안한 마음을 가지면 안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씨랜드는 이런 무관심화 훈련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 훈련 자체도 무척 위험하고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이죠. 그러다 보니 갑자기 무언가가(사람이든 아니든...) 풍덩하고 물에 들어오면 범고래들이 급격하게 관심을 가지고 (사람이라서 우리가 잔인하다고 느끼지만...) 그걸 이리 저리 끌고 다니면서 놀이 대상으로 삼게 됩니다. 


무관심화 훈련은 범고래가 어릴 때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이미 다 자란 범고래에게 이런 훈련을 시켜도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서 틸리쿰에게 무관심화 훈련을 하고 쇼에 참여시킬지 논란이 많았지만 결국 쇼에 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틸리쿰은 단숨에 쇼의 주인공이 되어버립니다.


하지만 1999년 7월 6일 이른 아침에 틸리쿰의 등에 사람의 시체가 얹혀져 있는 모습이 발견되면서, 틸리쿰은 다시 한번 사람들을 경악하게 합니다. 그 사람은 사고 4일 전에 교도소에서 출감한 Daniel Dukes라는 27살 청년이었는데, 7월 5일 쇼를 관람하고 어딘가에 숨어있다가 몰래 범고래 풀에 들어갔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CCTV 같은 결정적 증거는 없지만 모든 정황이 명백히 틸리쿰이 범인이라고 지목하고 있습니다.


이후 씨월드는 보안을 강화하고 쇼는 계속됩니다.


그러다가 2010년 2월 24일 「샤무와 만찬을(Dine-with-Shamu)」이라는 쇼 도중에 씨월드에서 가장 뛰어나고, 틸리쿰을 가장 잘 알았던 조련사 돈 브랜쇼(Dawn Brancheau)가 틸리쿰에게 살해됩니다. 관람객들이 보는 앞에서 조련사가 살해 당하는 이 사건은 미국 사회에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틸리쿰과 조련사와의 신체 접촉을 없애는 등의 조치가 취해진 후 2011년 3월 30일 틸리쿰은 쇼에 복귀합니다. 


이 사건을 분석한 노련한 조련사들은 돈의 머리카락이 문제를 일으켰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 당시 돈은 머리가 빠진 암 환자들에게 기증할 가발용 머리카락을 기르기 위해 평소보다 더 긴 머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고 당시 틸리쿰은 풀 가장자리에 뒤집어 누운 채로 돈의 어깨에 거의 닿을 듯 가까이 있었고, 그녀는 물 위에 누워서 틸리쿰을 어루만지며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틸리쿰이 갑자기 그녀의 머리카락을 낚아채서 물로 끌고 들어가면서 비극이 시작되었습니다. 틸리쿰이 왜 그렇게 흥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의 긴 머리가 자극이 되었다는 점과 틸리쿰의 무관심화 훈련이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점이 다시 밝혀졌습니다.    


2010년 사고 이후 계속되는 소송과 LA Coastal Commission의 인공번식 금지 조치[각주:6] 등에도 불구하고 거의 6년간 범고래 쇼를 계속해왔지만 유일한 번식용 수컷이자 쇼의 중심이었던 틸리쿰의 노쇠는 견디기 어려웠나 봅니다.


1965년 6월 최초의 공연, 전시용 범고래였던 나무(Namu[각주:7])의 뒤를 이어 그 해 10월에 잡힌 암컷 샤무(Shamu[각주:8])를 사들이면서 시작된 씨월드의 50년 범고래 쇼는 틸리쿰의 은퇴와 더불어 마무리되지만, 범고래의 임신기간이 17-18개월이라는 사실은 씨월드가 아니었으면 아마 아직도 모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해안에 좌초한 고래들을 제대로 다루어서 구조하고 치료해서 돌려보내는 방법을 익히는 데에도 이들이 가장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들은 이제 이런 구조, 치료 활동에 에너지를 쏟겠다고 합니다.


씨월드라는 기업의 변화는 동물에 대한 우리 인류의 인식 전환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러한 변화와 궤를 같이하면서 씨월드에서 20년 이상을 살아온 틸리쿰은 이 변화의 상징이 되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동물복지 운동가의 관점에서 보면 틸리쿰의 희생으로 큰 변화가 일어났지만, 씨월드의 입장에서 보면 애초에 사고를 쳤던 훈련이 안된 범고래를 구매하지 않았더라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여튼 틸리쿰과 씨월드가 만들어 낸 이야기는 드라마의 요소는 골고루 다 갖춘 것 같습니다.

     

틸리쿰 이야기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느끼시나요? 


그런데 최근에 큰 돈을 투자해 영업을 시작한 우리나라의 수족관들이 자꾸 머리 속을 맴도네요...   


  1. 출처는 위키피디아. https://en.wikipedia.org/wiki/Tilikum_(orca)#/media/File:Seaworld-Orlando-Shamu-1530.jpg [본문으로]
  2. 「SeaWorld killer whale Tilikum may be dying」 http://edition.cnn.com/2016/03/08/us/tilikum-orca-killer-whale-seaworld-illness/ [본문으로]
  3. 「SeaWorld's watershed change of heart on orcas」 http://www.latimes.com/opinion/editorials/la-ed-seaworld-breeding-20160318-story.html [본문으로]
  4. 「Tilikum, the Killer Whale Featured in ‘Blackfish,’ Dies」 https://www.nytimes.com/2017/01/06/science/tilikum-dead-seaworld-whale-blackfish.html?_r=0 [본문으로]
  5. 정확히 어떤 고래가 어떻게 몇 번을 물 속으로 끌고 갔으며, 누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지, 혹은 가담하지 않은 범고래도 있는지 등이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았습니다. [본문으로]
  6. 이 위원회의 성격과 법적 구속력은 잘 모르겠지만 그 당시 꽤 뉴스에 많이 오르내린 사건입니다. 「What the Coastal Commission's ban on orca breeding means for SeaWorld (http://www.latimes.com/business/la-fi-1010-seaworld-followup-20151010-story.html)」 [본문으로]
  7. 캐나다 BC주의 Namu라는 곳에서 포획되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본문으로]
  8. She-Namu라는 의미로 Shamu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 이름은 샤무가 죽은 후에는 범고래 쇼를 하는 고래를 부르는 일반 명칭(Stage name)으로 변했다가, 최근에는 범고래 쇼라는 일반화된 의미까지 가지게 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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