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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바다의 도시 이야기 (Umi No Miyako No Monogatari, 1995)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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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바다의 도시 이야기 (Umi No Miyako No Monogatari, 1995)

sealover 2011. 3. 10. 21:08
“베네치아공화국 1천년의 메시지”라는 부제가 붙은 책이다. 물의 도시 베니스는 알아도 베네치아 공화국 (452 혹은 697 - 1797)이라는 개념은 처음 알았다. 로마의 멸망과 더불어 이탈리아 북부에 살았던  일단의 사람들이 북쪽에서 쏟아지는 야만족들을 피해서 석호 위에 도시를 만들고 살기 시작한 것이 시초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을 따름이다. 그런데 베네치아는 하나의 도시가 아니라 중세를 치열하게 살아온 국가였다.

이들도 사람이 살아가는 터를 다지고 자신들만의 정체 (政體)를 세우는데에 거의 500년의 시간을 보냈고 11세기 이후 지중해 최대 교역국으로 발돋움하고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면서 번영을 구가하다가 18세기말에 나폴레옹의 손 아래 스러져갔다.

최초로 상주 대사 제도를 운용한 베네치아는 외교의 달인이었고, 유럽 지역의 정보통이었다. 능수능란한 외교와 합리적인 경제활동에 힘입어 대항해 시대의 도래에 따른 경제적 난관도 잘 넘기고 막대한 부를 축적한 국가이다. 터키와의 관계에서는 도저히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기에 그런 경우는 무력 대응도 마다하지 않았다.

내치에 있어서는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엄격하게 시행하여 국가도 국민도 감정에 치우쳐 일을 처리하기 보다는 실리를 따져서 판단/행동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주었고, 공동의 이익에 반하지 않는 한 자유를 특히 언론에 있어서 자유를 허용했기에 학문과 예술의 성공도 맛보았다.

하지만, 베네치아도 17세기 이후 변해버린 게임의 법칙을 따라가지 못했다. 전제 군주국가들의 대두로 전쟁의 규모가 커져버렸고, 세밀히 계산한 뒤에 실리를 따져서 개전하기 보다는 영토의 확장만 이루어진다면 다른 건 아무래도 좋은 그런 혼란의 시대에 상대에게서 이성적인 판단을 이끌어 내고자 했으니 아무것도 될 리가 없었다. 더구나 마지막 순간에는 정보도 부족했고, 판단력도 흐려졌고, 나폴레옹에 대응할 용기도 없었다.

로마사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이야기가 방벽(Limes)과 군단에 관한 이야기라면 베네치아에서는 해상보급로 확보와 외교다. 베네치아 외교의 기본이 실리 추구였기 때문에 대의명분에 그다지 집착하지 않았다. 그래서 당시 기독교 국가에서 신경질적인 반응으로 일관한 이교도들과도, 로마 교황청에서 싫어한 개신교도들과도 교역을 하고 인적 교류도 활발하게 했다.

철저하게 타인을 존중하고 중산층을 위한 반영웅의 국가. 이런 베네치아가 퍽이나 맘에 든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작은 생각에 빠지게 한 것은 외교에 관한 부분이다. 현재 만들어진 외교의 틀을 만든 나라가 베네치아라는 생각이 든다. 상주 대사 제도를 처음 시행하여 상대국  실력자들과 평소 친분을 쌓고 정보를 수집하고 국익을 위한 정세 보고서를 본국에 보내는 진정한 외교의 본질은 그들의 창작품이다.

양국의 관계가 악화되면 죽임을 당하기도 했던 시기에 국왕 (베네치아는 원수)의 신임장과 상대국 국왕의 통행 허가증을 들고 전쟁과 국토의 이양에 대한 내용까지 담은 비밀 훈령을 간직한 채 대사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상대국으로 가는 베네치아의 외교관들을 보면, 지금은 왜 저런게 있을까 라고까지 느껴지는 “외교관 면책특권”이 얼마나 어렵게 얻은 국가간 합의인가 하는 부분이 느껴진다.

스스로는 뇌물이나 정치인/공직자의 부패를 엄격히 금지한 베네치아지만 외교관에게는 상대국 유력자에게 선물할 금액까지 훈령에 담아두는 나라였다. 가끔은 수표로 지급했다가 성과가 없으면 수표를 지불금지 하기도 했다. 외교관들은 식사도 여러나라 외교관들과 전략적으로 하라고 베네치아는 말하고 있다.   

당시의 특사나 대사는 당면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그야말로 국가대표였는데, 지금 우리는 과연 어떤가하고 돌아보게 된다. 귀족이라는 사회지도층이 무보수로 임무를 수행하던 시절과 직업관료 체재로 운영되는 오늘날의 외교관은 다르지만 직업관료들이 더욱 전문적이고 열심히 해야하는 것 아닌가? 이제는 국가간 협상도 너무나 많아서 각 담당자들도 넓게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도 주어진 상황에서는 최선을 다하고 싶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베네치아는 외교뿐만 아니라 이발사와 외과 의사를 구분한 최초의 국가였고, 상선학교도 처음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상선학교는 날로 쇠퇴해가는 해운업을 살리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아름다운 물의 도시는 억지로 만들어진게 아니라 협소한 공간을 이용하기 위한 아이디어와 중계무역의  번영으로 이룩한 부의 자연스런 표현이었다.

언제 가볼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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