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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로마인 이야기, 두번째. 본문

책을 읽자!

[독후감] 로마인 이야기, 두번째.

sealover 2011. 4. 18. 18:06
이 책. 다시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는 로마가 융성하고 강해지는데 신경이 많이 쓰이더니 두번째는 10권 이후, 즉 서서히 몰락해가는 데에 신경이 더 쓰인다.

작가는 로마 제국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로마 시민권을 준 카라칼라 황제의 칙령이 사회의 활력을 떨어트렸다고 이야기 한다. 충분히 공감이 간다. 어쩔 수 없이 시행해야 하는 제도도 있지만 이 경우는 정말 그렇지 않은 듯하다.  

모두가 평등해지면서 오히려 불평등이 가속화 되었는데, 참 뭐라 설명하고 이해하기가 곤란하다. 법적으로 모두가 동등해지면서 로마인들에게 상층부로 이동하고자 하는 욕구, 즉 동기부여에 실패하게 되면서 역동성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여기서 느끼게 되는 것은 어쩌면 제도 그 자체 보다도 한 사회가 가진 역동성이 에너지의 총량이 되고 결국 그 에너지가 사회를 이끄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민주주의의 총 본산, 원조 내지는 성지로 여겨지는 아테네도 우리가 말하는 그 평등한 시민이 되는 길이 거의 막혀있었기 때문에 (부모가 모두 아테네인이 아니면 아테네 시민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플라톤도 그 평등한 아테네 시민이 되지 못했다), 사회공동체의 규모를 더 이상 키울 수 없었다.

로마도 모두가 평등해지면서 다른 쪽으로 삶에 대한 동기부여를 할 수 있었으면 모르는데 그러지 못했다. 물론 그 시대에 과연 다른 무엇이 있을 수 있었을지 알기는 어렵다.

그리고 로마의 마지막 부분에서 퍽이나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주제가 기독교다. 로마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했고 현재의 기독교회 체재를 만들어 준 장본인이니 그럴 수 밖에 없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죽음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기독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한 줄 밝히고 있다.

영혼이 육체를 떠나야 할 때, 그것을 편안히 받아들일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하지만 이 마음의 준비는 인간의 자유로운 이성으로 이룩한 결과여야 한다. 기독교도들처럼 완고한 믿음이 아니라.

하지만 누구나 안다.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쉽다면 기독교뿐만아니라 종교 자체가 없어져 버리고 말테니 말이다.

종교의 역할이 구원이라면 현세의 삶이 팍팍할수록 그들의 역할이 커지는것은 당연한 일이다. 로마 제국의 말기에 이르러서는 민중은 의지할 곳이 점차 없어져버린다. 그런 그들에게 기독교가 도움이 되었겠지만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의 다른 측면에 주목하고 기독교의 진흥에 힘쓴다.

여기서 밀라노 칙령을 써 보면....

오늘부터 기독교든 다른 어떤 종교든 관계없이 각자 원하는 종교를 믿고 거기에 수반되는 제의에 참가할 자유를 완전히 인정 받는다. 그것이 어떤 신이든, 그 지고의 존재가 은혜와 자애로써 제국에 사는 모든 사람을 화해와 융화로 이끌어주기를 바라면서.

칙령만 보면 기독교를 다른 종교와 같은 자리로 끌어올려준것 뿐인데, 지방장관에게 보내는 지시를 보면 보다 구체적이다.

기독교도에게 인정된 이 완전한 신앙의 자유는 다른 신을 믿는 자에게도 똑같이 인정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우리가 완전한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기로 결정한 것은 그것이 제국의 평화를 유지하는데 효과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고, 어떤 신이나 어떤 종교도 그 명예와 존엄성이 훼손당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속내는 기독교가 강조하는 (신이 내린) 권력의 정당성을 자신에게 부여하고, 조직적 구성원 관리를 통한 민중의 관리에 주목했다. 그는 원하는것을 얻었고 상대도 그러했다. 로마는 뭘 얻었지?

그렇게 로마가 스러져가는 제국 말기에 야만족인 테오도리크 치세에 '팍스 바르바리카'란 말로 표현되는 평화를 누리게 되자, 인구증가와 경제 회복이 이루어지는데 작가는 그를 보고 역시 인간사회의 가장 큰 인프라스트럭쳐는 '평화'라고 말한다. 평화....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자꾸 떠오르는 이야기가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이유가 제 각각이라는 안나카레니나의 첫 구절이다. 어떤 공동체라도 모든게 박자가 맞아야 잘 굴러가고, 하나라도 어긋나면 굴러떨어진단 말이다. 그 어긋나는 요소가 인력으로 어쩌지 못하는 부분일지라도 말이다... 

삶 앞에 겸허해 진다. 


뜬금 없지만 이 책에 대한 전문가의 시각을 첨부해 둔다. <역사비평>의 1997년 여름호에 실렸던 고려대학교 사학과 김경현 교수의 글이라고 한다.  http://dcafe.tistory.com/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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