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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소매치기(제네바는 양념)

sealover 2018. 5. 21. 04:52
로마의 소매치기는 꽤 유명하다. 로마 여행에 관한 글을 읽으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메뉴이기도 하고 심지어 로마에서 기차표를 사려고 자동 판매기 터치 스크린에서 언어를 선택하면 제일 먼저 나오는 안내 문구가 "소매치기 조심하세요."다. 기차표를 구매하느라 모니터에 집중하다가 소매치기를 당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것 같다.
 

그래도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려니 하고 기본적인 안전 조치는 해 두지만 별 관심이 없었는데 소매치기와 맞닥뜨리고야 말았다. 
시내 관광을 하다가 피곤해서 목적지까지 걸어가려다가 한 정거장을 전철을 타고 가려고 기다렸는데, 문에서 좀 들어간 안 쪽은 약간 덜하지만 문 근처는 거의 서울 지하철 수준으로 붐빈다. 하지만 피곤하기도 하고 한 정거장만 가면 된다는 마음에 겨우 비집고 올라탔더니 어린 여자애들(화장을 짙게 해서 처음엔 어린애들인 줄 몰랐다.) 세 명이 우리를 뒤따라서 올라탄다.
걔들이랑 몸이 너무 바짝 붙어서 괜한 오해 살 일이 생길까봐 온 몸에 신경을 곤두 세우고 아내 쪽으로 몸의 방향을 돌리려고 하는데 지갑을 살짝살짝 건드리는 게 느껴진다. 처음엔 이게 뭐지?했다가, 아… 얘들이 말로만 듣던 소매치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른 아내에게 가방을 조심하라고 일러주고 고개돌려 애들 얼굴을 보니 진짜 어린 애들이라는 게 느껴졌다. 근데 아내도 누군가 자기 가방을 잡길래 나인줄 알고 손을 잡았더니 여자애 손이라서 깜짝 놀랬다고 한다.  ㅋ 걔는 또 얼마나 놀랐을까?
로마는 성인이 이런 범죄를 저지르면 처벌이 크지만 15살 이하의 애들은 잡혀도 처벌을 받지 않기 때문에 애들이 주로 이런 범죄를 저지르고 칼을 사용해서 가방을 손상하거나 하면 또 죄가 커지기 때문에 그런 짓도 잘 안한다고 한다. 그리고 남자애들한테는 피해자들이 아무래도 더 폭력적이기 쉬우니까 이래저래 주워들은 지식들과 상황을 끼워 맞춰보니 이런 여자애들이 딱 소매치기다.
로마에 며칠 살면서 남자 애들이 스키니진을 입고 휴대폰과 지갑을 앞주머니에 넣어서 불룩하게 해 다니는게 무척 어색해 보이고 옷맵시를 엉망으로 만든다고 생각하다가 소매치기 때문일거라는 생각이 들자 나도 사람 많은 곳에서는 지갑과 전화기를 앞 주머니에 넣어두고 다녔다(나는 헐렁진이라서 앞이나 뒤나 여유가 많다.). 안 그랬으면 바로 털렸을지도 모르겠다.
여튼... 이제는 애들 몸에 부딪히는거 신경 안쓰고 억지로 손을 지갑이 있는 앞 주머니로 밀어넣었다. 그러자 여자애들 두 명이 몸 여기저기를 툭툭 치면서(주의를 분산시키려는 소매치기들의 고전적 수법) 시간도 물어보고 어떻하든 틈을 만들어보려고 애를 쓴다. 맘에서는 오만가지 말이(주로 나쁜 말) 올라오지만 벙어리 신세라 꾹 참고 소지품만 챙겼다.
다음 역에 내리니 얘들도 내려서 사람 많은 전철 칸을 찾아서 또 한건 하려고 두리번 거린다. 진짜 로마에 소매치기가 많은가?하고 의아해 했었는데 아주 사람 많은 곳에서만 걔들이 다니니까 떼르미니역 같은 사람 많은 장소에 자주 가지 않았던 나는 볼 기회가 없었다.
이젠 이런 애들 보면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 것 같다. 나라고 내세울만한 인생을 사는 건 아니지만 어린 나이에 저렇게 짙은 화장을 하고 남의 지갑을 털다가 들키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바로 옆에서 또 그러고 다니는 애들이 참으로 안쓰러워 보였다.
그런데 소매치기가 많다고 해서 로마가 엄청난 범죄 도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러가지 범죄 통계가 있지만 폭력, 성범죄 등은 나라마다 기준이 달라서 국가간 비교에 부적절한 경우가 있다. 하지만 살인의 경우 기준이 명확하기 때문에 국가간 비교에서 믿을만한 통계다. 특히 OECD 통계라면 더욱 신뢰가 가는데 2013년 자료를 보면 이탈리아가 우리나라보다 살인이 (아슬아슬 하지만) 더 적다(http://www.businessinsider.com/oecd-homicide-rates-chart-2015-6, OECD 홈페이지에서 최근 자료를 찾아봤는데 구할 수가 없다. 엄청난 시간을 들여야 찾을 수 있거나 따로 요청을 해야 주는 것 같다. 이런 통계는 뉴스의 파장이 커서 잘 공개를 안하는 것 같다.). 아마 이탈리아 살인 통계는 주로 나폴리 같은 남부 쪽이 높을텐데 그렇게 보면 로마는 무척 안전한 도시일거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물론 살인에서 안전할거라는 이야기지 소매치기는 언제나 조심해야 한다.


[부록]제네바 소매치기
꽤 오래전 스위스의 제네바에 가려고 호텔 방 예약하려는데 방도 잘 없고 비싸서 알아보니 내가 가려는 기간과 유로챔피언 경기가 열리는 날이 겹쳐서 그렇다고 한다. 제네바는 모터쇼나 뭔가 행사가 있으면 늘 그렇다. 그런데 그 때는 소매치기들의 대목이다. 전 세계에서 호구들이 몰려드니 어찌 안그렇겠는가?
비싼 돈 주고 좁은 방에서 자는 걸 투덜거리면서 제네바에 도착해서 호텔로 걸어가는데 왠 청년들이 다가와서 말을 건다. 어디서 왔냐고 묻더니 한국도 축구 잘한다면서 (정확히 기억이 안나는데) 아마도 "대˜한.민.국!"을 외치며 절친한 척하면서 드리볼 흉내를 내며 내 몸을 부딪히려고 한다.
나는 외국에서 낮선 사람이 말 거는 것도 싫어하려니와 몸을 부딪히는 행동은 내가 범죄의 대상이 되거나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어서 극도로 꺼린다. 그래서 바로 정색을 하고 내 몸에서 떨어지라고 하고 당장 저리가라고 했다. 그래도 실실 웃으면 말을 걸다가 표정이 단호하니까 못 알아들을 말을 중얼거리면서 사라진다.
호텔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려는데 잘 생긴 젊은 청년이 찾아와서 호텔 프런트에 신분증을 보여주고 뭔가를 이야기하더니 내게 와서 스위스 경찰이라면서 소매치기 당하지 않았냐고 물어본다. 아니라고 답하니까 잊어버린 게 없는지 다시 한번 잘 찾아보라고 한다. 내가 상황을 설명해 주니까 그제서야 수긍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준다.
제네바에는 이런 철이 되면 알제리 같은 나라에서 조직을 구성해서 수 백명이 소매치기를 하러 온다고 한다. 경기를 하는 팀에 대해서 공부를 해와서 어느 팀 응원하냐고 물어보고 말을 걸어서 축구 관련 대화를 유도하면서 주의를 분산시키고 소매치기를 한다고 한다. 내게 들러붙은 애들(두 명)도 경찰들이 계속 지켜보다가 내게 작업 거는 것을 확인하고 (피해자 확보를 위해) 자기는 이리로 오고 딴 팀은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지금 계속 걔들을 미행 중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협조해줘서 고맙다고 하고 호텔을 나간다.
경찰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나 때문에 소매치기와 경찰이 둘 다 허탕을 친 하루가 되었다. ㅋ
로마와 제네바의 차이는 현지인과 원정단 그리고 조직적인 사전 준비 여부인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차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람 많은 곳은 어디에서든 늘 조심하는 습관을 들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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