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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을 떠 다니는 유리구 (Glass Ball) 본문

지난 세상살이/2014 세상살이

태평양을 떠 다니는 유리구 (Glass Ball)

sealover 2014. 8. 21. 09:09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보기 힘들지만 미국과 캐나다 쪽 태평양에서는 어구 (Fishing Gear)에서 뜸 (Float)으로 사용하던 유리구 (Glass ball)를 가끔 볼 수 있다.


뜸은 어구에서 부력을 생성하는 부분인데, 아래 그림과 같은 트롤의 경우 배와 그물 사이에 있는 전개판[각주:1]은 그물을 좌우로 벌려주는 역할을 하고, 그물 입구의 아래 쪽은 무겁게 만들어서 가라 앉도록 하고 위 쪽은 뜸을 달아서 떠 오르게 만들어서 그물을 아래 위로 벌어지게 한다.


<그림 출처; http://www.fips.go.kr/images/kno/image011.jpg>


이렇게 그물이 잘 벌어질수록 넓은 면적의 바다를 훑고 지나가게 되니까 더 많은 고기를 잡게 되기 때문에 뜸의 역할은 중요하다. 이 그림도 자세히 보면 그물 위 쪽의 뜸을 둥글게 그려 놓았는데, 요즈음은 예외 없이 플라스틱으로 만든 구 (Ball)를 사용하지만 예전에는 유리로 만든 구를 사용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http://en.wikipedia.org/wiki/Glass_float) 1840년경 노르웨이 사람이 고안해서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게 일본에 전해져서 일본에서는 1910년경부터 1940년 경까지 엄청나게 많은 양을 사용했으며, 그 이후로 유리구를 더 이상 만들지 않았지만, 여전히 그 당시 만들어진 유리구를 사용하는 어민들도 있다고 한다.


어떤 이유에서건 이렇게 어구로 사용되던 유리구가 일본을 출발해서 긴 시간 바다 위를 떠돌다가 여기 캐나다까지 오게 된다. 태평양 전체가 시계방향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무척 험난하고 긴 여정을 거쳐야만 하기 때문에, 이곳에서 발견되는 유리구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 많은 이야기를 담게 된다.


수십 년 전에 만들어져서[각주:2], 어구에 몸이 묶인 채 바닷속을 오가다가, 혼자 떨어져 나와서 오랜 시간을 이리저리 흘러다니다가, 바다에서 만난 따개비들을 몸에 가득 붙이고 어린 고기들에게 작은 그늘을 만들어 주기도 하면서 세월을 견뎌낸 것이다. 유리구 속에 갇혀 있는 공기도 언제인지 모를 그 옛날의 공기 그대로다.


<거북손을 가득 붙이고 바다 위에 떠 있는 유리구 (Photo by Bruce Paterson[각주:3])>


그러다보니 바닷가 산책을 자주하거나 바다에 나갈 일이 잦은 이곳 사람들은 이 유리구를 발견하면 무척 귀하게 여기고 좋아한다.


내가 바다로 조사를 나가서 하는 일이 종일 고래가 있나 없나 물 위를 보는 일인데 2013년 8월, 2014년 3월에 두 주간씩 했던 조사에서는 유리구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선원들은 유리구를 하나 소장하게 되면 자기가 얼마나 오랜 시간 바다에서 보냈는지를 그 유리구가 증명하게 된다면서 굉장히 가지고 싶어 한다. 그래서 유리구가 있는지를 꼭 세심히 보라고 부탁을 하곤 한다.


그런 유리구를 2014년 8월 두 주간의 조사에서 5개나 발견했다. 조사에 참여한 조사원들이나 선원들이나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나도 하나 발견했다. ㅋ 사진의 위 쪽이 바다를 떠 다닐 때는 물 속에 잠겨 있는 부분이다. 거북손 (Goose Neck)이라는 따개비 사촌들이 잔뜩 붙어있다.


<물에서 건져 올린 직후의 유리구[각주:4]>


<거북손을 확대한 사진[각주:5]>


그런데 이 유리구를 발견자가 가지는 게 아니다. 항해 마지막 날 승선자 개개인의 이름이 적힌 쪽지를 넣은 투표함을 만들고 발견자가 추첨을 해서 당첨된 사람에게 준다. 나는 유리구 한 개를 발견하는 행운도 누렸는데[각주:6], 당첨까지 되었다. ㅋ


<유리구 가져갈 사람을 추첨하는 중 (이 사진도 by Brianna Wright)>

거북손을 떼어내고 집에 들고 왔는데, 한국에 돌아갈 때 동료들 싸인을 여기다가 받아갈까?하는 생각이 든다. 분명 기념이 될 터이니 좀 귀찮아도 그렇게 하고 싶다.


내가 발견한 유리구는 어떤 사연을 담고 있을까?



  1. 연 날리기와 같은 원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본문으로]
  2. 지금 발견되는 유리구들이 정말 1940년 이전에 만들어졌는지는 나도 의심스럽다. 최근에 만들어진 유리구도 있을텐데 자료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여기까지 흘러 오려면 최소한 10년의 세월은 견뎌야 하리라. [본문으로]
  3. 이 분은 엄청난 고래 촬영 전문가다. 300mm 짜리 무거운 렌즈를 들고 고래가 물 위로 솟아 오르는 그 짧은 순간을 어떻게 카메라로 정확하게 잡아내는지 옆에서 지켜보면 신기하다. [본문으로]
  4. 위 사진의 물 위에 떠 있는 유리구와 이 유리구는 같은 것이 아니다. [본문으로]
  5. 사진의 저자는 같이 조사에 참여했던 Brianna Wright이다. [본문으로]
  6. 우리가 보면 별 일 아닌데 이 사람들은 그 때 바다 상황이라든가, 어떻게 발견했는지, 물 위에서 어떻게 반짝였는지 등을 두고두고 이야기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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