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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상살이/2019 세상살이

휴지는 휴지통에

sealover 2019. 12. 28. 19:47

고등학교 1학년 때 일이다. 그 시절에는 교련이라는 과목의 수업이 있었다. 수업 내용은 기초 군사 훈련이다. 교실에서는 기초 군사학을 배우고 운동장에 나가서 제식 훈련과 총검술을 익혔다. 또다시 6.25같은 큰 전쟁이 나서 고등학생들까지 전선에 투입될 경우, 최소한 총알받이는 면하게 해 주자는 취지의 과목이다. 전쟁준비라고 말해도 큰 차이는 없을테지만...

이 동영상을 보면 어느 정도 상상이 간다. 대한뉴스 제 1087호-교련 종합실기대회.

이제 갓 고등학생이 된 아이들에게 나란히 줄을 맞춰 같은 동작으로 움직이는 제식 훈련은 무척 생소하고 어렵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1년에 한 번 군인들이 이 훈련의 성과를 직접 평가하고, 만일 불합격이 될 경우 합격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게 큰 부담이었다. 봄에 이루어지는 이 평가에는 전교생 모두 참여하는데, 1학년들은 입학과 동시에 그 훈련을 준비하고, 3학년들은 이미 두 번의 경험이 있는지라 평가 직전에 모두들 나와서 훈련을 한다. 그래도 3학년이 제일 잘한다.

대학 입시 준비를 해야 하는 3학년들에게 수업도 안하고 준비하는 이 평가는 무척 부담스러울뿐만 아니라, 만에하나 불합격이라도 하는 경우에는 그만큼 공부할 시간이 줄어드는 터라 온 학교가 신경이 곤두서서 제일 못하는 1학년들의 훈련을 지켜본다. 그러다보니 평가 당일 합격 통보가 떨어지면 그날은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서 신나게 논다. 학교에서는 약간의 빵과 음료수 등을 준비해서 아이들 기분을 돋궈준다.

평소 교장 선생님이 일장 훈시를 하시는 연단에는 학생들이 올라가서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3학년 선배 한 명이 노래를 부른 뒤 후배들에게 인생에 큰 도움이 되는 한 마디를 하겠다고 해서 모두들 숨을 죽이고 듣고 있는데, 큰 소리로 "휴지는 휴지통에"라고 외치고 내려왔다.

모두들 와르르 웃고는 또 여흥이 이어졌다. 그런데 난 웃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계속해서 들어왔던 이야기고 특별할 것도 없고 별 것도 아닌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내 머릿속에 꽉 들어차서, 난 그때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계속 그 말만 생각했다. 왜 그랬는지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냥 계속 그 생각만 했다.

그 말은 그렇게 내 머리 속에 남아서 무척 사랑하는 말이 되었다. 대학에 간 이후 술자리에서 자주쓰는 건배사 중 하나가 "휴지는 휴지통에"였을 정도니. 나는 그 말의 의미를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공동체 생활을 하자는 뜻으로 사용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뒤로는 주변을 깨끗이 청소하고 정리하면 업무 성과 달성에도 유리하다는 뜻으로까지 확장해서 사용하고, 동료들에게도 그렇게 이야기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말은 차츰 내 생활에서 잊혀져 가는 말이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휴지는 휴지통에 버린다는 기초 질서를 누구나 다 당연하게 생각하고 지키게 되어서 그 말의 수명이 다 했던 탓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말을 다시 사용하게 되었다.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버려지는 일회용 음료수 컵이 너무 많아서, 내 아이들에게나 직장 후배들에게 너희들만이라도 제발 그러지 말라고 잔소리를 하게 된다. 이 말을 쓰는 상황 또한 옛날보다도 더 나빠졌다.

예전에는 단지 휴지를 휴지통에 버리자는 의미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공동체 생활을 다 같이 행복하게 하자는 의미까지 담아서 그 이야기를 했는데, 이제는 정말 쓰레기를 휴지통에 버리자는 직접적인 의미를 전달하기에 급급해서 그렇다.

깨끗한 환경이 만들어지는 방법은 둘 중에 하나다. 휴지를 아무렇게나 버리는 등 어지럽히지 않거나, 어지럽혀진 상태를 정리하는 것이 그것이다. 달리 뾰족한 방법이 있을 리가 없다. 지금 우리 주변에 늘어나는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을까? 청소하는 사람을 많이 늘이는게 지금 우리나라 형편에 맞는 방법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국민들이 낸 세금이 더 절실할 뿐만 아니라 더 큰 효과를 가져올 곳이 많다. 깨끗한 환경에서 살면 마음의 번잡함을 벗어내고 행복해질 수 있다(「정리하는데 뇌」를 참고하시길...).

앞서 이야기 했지만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게 되면 결국 타인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 평소 최소한 남에게 피해를 주지말자는 말을 자주하는데 유명하신 분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남이 너에게 행하기를 원치 않는 일은 너도 남에게 행하지 말라."
-홉스, 리바이어던-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예수, 마태복음 7:12-
"己所不欲, 勿施於人(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 베풀지 말라)"
-공자, 논어-
"네 의지의 준칙이 동시에 모든 이성적 존재의 보편적 입법 원리가 되도록 행위하라"
-칸트, 정언명령-

모두가 휴지를 휴지통에 버리면서 번잡하지 않은 깨끗한 삶을 살아가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심도 실천하길 바란다.

<그림은 pixabay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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