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에서 놀자!!
[독후감]자연에 이름 붙이기 (2023 윌북) 본문
퍽 재미있게 읽었다. 하지만 누구나 재미있어할 것 같지는 않았다.
책의 전반부에 200여 년에 걸친 분류학의 역사를 잘 정리한 부분이 특히 재미있었다. 생물분류학 학부 수업을 충실히 들었거나 대학원생 정도라면 분류학의 역사가 잘 정리되어 있고, 아는 이름도 많이 나오며, 교과서에서 볼 수 없는 이야기가 많아서 더 그럴 것 같다. '이야기꾼'인 Homo sapiens에게 뒷담화는 언제나 최고의 오락이다.
하지만 책의 핵심 주제 중 하나인 1970년대 분기학자들이 등장하며 '물고기를 살해'하는 사건에 대한 서사는 배경지식이 부족한 독자가 이해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간단히 설명하면, 이미 폐어류와 포유류가 공통 조상을 가진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포유류를 제외하고 어류강(Class Pisces)을 측계통군(Paraphyletic group)으로 구성하여 하나의 분류군으로 묶어두었는데(즉, 물고기가 존재했는데), 이게 원칙에 어긋난다는 논리를 분기학자들이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결국 포유류를 어류에 넣기 민망했던 학계는 어류강을 없애고(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분류군을 재정립했다. 책만 읽고 이런 속사정을 파악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측계통군을 비유하자면, 김씨 집안 족보를 만들면서 미국으로 이민 간 시민권자 김씨들을 뿌리는 같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족보에서 제외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원칙은 족보에 올리는 게 맞지만 슬그머니 빼도 아무도 딴지를 안 걸었는데, 캘리포니아에 시집간 딸이 갑자기 나타나 집요하게 원칙을 따지니 상황이 거시기해지고 족보를 다시 쓰게 된 것이다. 그게 이 책의 '물고기 살해'다.
책의 후반부는 전반부보다 재미없었다. 저자는 과학으로 파악한 진화 과정과 유연관계를 전적으로 반영한 분류학이 대중과 멀어지고 과학자들만의 영역으로 고립되면서, 생물 그 자체와 생물 다양성 보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덩달아 멀어졌다고 진단한다.
책의 말미에 저자는 개인의 움벨트(Umwelt)를 과학적 사실에 구애받지 않고 나만의 방식으로 자연 친화적으로 확장 또는 강화하는 것을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자연과의 접점이 커질수록 보존에 대한 열의가 커질 것이라는 예측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이 행성에 존재했던, 그리고 지금 존재하는 생물의 진화와 유연관계를 정확히 파악하는 움벨트를 가진 대중이라면 더 뛰어난 '행성 수호자'가 되지 않을까?
참고로 움벨트는 동물행동학 용어다. 동물들은 각 종 또는 개체가 가진 감각 정보를 통해 세상을 인식하고 구성한다. 사람은 시각이, 개는 후각이 중요한 입력 정보이기에 두 존재가 인식하는 움벨트, 즉 세상은 다르게 존재한다. 이 책의 저자는 개개의 인간에 차이가 있더라도 Homo sapiens가 공유하는 생물에 대한 일종의 직관이라는 개념으로 이 용어를 사용한다.
어릴 때 '린네'라고 배웠는데, 이 책에는 '린나이우스'라고 쓰여 있길래 린네도 살해되었는지 궁금해서 찾아봤다. 본명은 린네인데, 당시 과학자들이 라틴어식 이름을 쓰는 게 유행이라 학술 자료에는 '린나이우스'라는 이름을 썼다고 한다. 린나이우스는 일종의 'Scientific name'이었던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