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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삼엽충 (Trilobite, 2000)

sealover 2011. 9. 21. 13:09
지루했다.

독자들을 지루하게 하지 않으려고 가능한 삽엽충의 이름 나열은 피하면서 두 차례의 대멸종을 이겨내고 3억년을 살았던 그들의 역사와 진화를 이야기하고자 엄청난 노력을 하셨다.

하지만, 재미와 상징을 주기 위해 삽입한 문학 작품들을 내가 잘 몰랐고 기본적인 배경 지식을 알려줘야만 하는 (독자들을 힘들게 하는) 이런 글은 역시 재밌게 쓰기가 힘들다는 사실만 확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분의 연구와 세상에 대한 관점에는 깊이 동의한다. 세상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소수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의 생각은 비슷할수밖에 없나 보다. 다만 자신의 이름이 붙은 과학적 발견으로, 학명의 명명자로서 육체는 없어지더라도 자신의 이름이 불명성을 가지게 되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부분에 있어서는 그것도 다 욕심이고 부질없다는 생각이 나는 든다. 

다소 재미있었던 부분은 단속평형설, 점진적 진화론, 이시성 이론이 삼엽충 연구에서 나왔다는 "삶과 죽음"이라는 표제가 붙은 7장이다. 루돌프 카우프만의 이야기는 나도 가슴이 아프다.

삼엽충에 관한 과학적 사실들은 인내를 가지고 책을 읽으면 되겠고, 시간 앞에 서있는 우리를 돌아보며 인생을 생각하고, 바람직한 연구자의 자세를 되새기고,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비인기 (명예와 금전의 중심점에서 멀다는 이야기다) 종목(?)에 대한 연구 (다른 어떤 분야라도 마찬가지다) 생활에서 정신적 지주를 찾기 위해서라면 9장 "시간"과 10장 "눈이 있는자, 보라!"를 자세히 읽으면 되겠다.

본문 몇 줄 옮긴다.
어떤 과학자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 의도적으로 오도시키는 행위다. 그 속임수가 사익을 위한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
속임수를 동원하여 '명약관화한 지식'에 대한 요구를 욕보이는 사람은 결코 '과학의 진정한 아들'이 아니다. ... 예술가는 무언가를 꾸며냈을 때 기쁨을 느끼고 과학자는 발견을 했을 때 그에 상응하는 기쁨을 맛본다. 시간은 예술가가 품은 전망의 질을 시험할 뿐 아니라, 과학적 발견의 내구성도 시험한다. 
 
지루한데도 저자의 살아가는 이야기에 대한 공감으로 잘 읽었다. 읽으면서 삼엽충에 대한 관심이 자라난다면 전혀 지루하지 않을 책이다. 내 주위에 그럴 가능성이 있는 친구가 몇 명 떠 오른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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