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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상살이/2018 세상살이

로마 시내 교통 카드 정액권 구매하기

sealover 2018. 5. 24. 21:12
로마의 교통 카드는 옛날 우리나라 담배 가게 같은 타바키(Tabacchi)나 지하철 역 같은 곳에 설치되어 있는 자동판매기를 이용하면 75분간 로마 시내 대중교통(버스, 전철, 트램, 기차)을 무제한 사용 가능한 1회권(1 EUR), 하루권, 일주일권 등의 교통 카드를 구매할 수 있다. 여기에 관한 내용은 조금만 검색하면 다른 블로그들에 자세히 소개가 되어있다. 그런데 굳이 하나 더 보태면 자판기에 신용카드 사용이 된다고 표시되어 있으나 안되는 경우가 많다. 로마에서는 뭔가 잘 안되면 내가 잘 못하는 경우 보다는 기계가 고장난 경우가 더 많으니 당황하지 말고 다른 기계를 이용하자.

나는 시내 관광과 생활을 위해서 한 달 정액권을 구매하기로 했는데, 자판기에서 한 달 정액권은 안 판다. 이것저것 알아보니 MyCicero라는 앱을 깔면 모바일로 한달 정액권을 구매할 수 있다고 하길래 회원 가입도 하고 신용카드 정보도 입력했더니 월 정액권 구매가 가능하다고 메시지가 뜬다.

순조롭게 구매를 진행하는데 마지막에 “납세번호”를 입력해야 한다는 안내가 나온다. 그런게 있을리가 없으니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트립어드바이저에서 한 미국인의 경험담을 찾았다.

내용은 엄청 긴데 요약하면 로마의 대중교통을 관할하는 ATAC와 세무서 등 관공서에서 여기저기서 뭘 떼오라고 사람을 이리저리 뺑뺑이 돌리는 데 열 받아서 돌아다니다가 결국 포기하고 동네 담배 가게(타바키)에서 정액권을 샀다는 이야기다.

ATAC 사무실이나 모바일로 구매하면 35 EUR인데 동네 가게에서 사면 38 EUR다. 돈 차이는 그렇다쳐도 모바일로 구매하면 분실 등의 위험에서 안전하다는 점에서 그렇게 하고 싶었는데 이미 이동 전화 개통 문제로 통신회사 TIM에서 충분히 열 받고 있던 터라 3 EUR 더 주고 동네 가게에서 깔끔하게 구매했다. 아래 그림 중간에 나오는 "eRoma"라고 써진 카드다.

그런데 주의 사항이 있다. 먼저 한달 정액권은 사용 개시한 날부터 한달간 유효한 게 아니라 매달 1일부터 말일까지만 사용가능하다. 그전 달 25일부터 그 달 24일까지 그 달의 정액권을 판매한다. 만약 24일에 표를 구매하면 돈만 비싸게 지불하고 일주일 정액권이나 사용 기간은 동일해 진다.  

그리고 구매 영수증을 교통카드 뒷면에 부착하고 다녀야 한다. 경찰이 요구하면 영수증도 같이 제시해야 하고(당연한 이야기지만 없으면 불법이다.) 뒷면 마그네틱 손상이 있을 경우 영수증이 있어야 재발급 해 준다고 한다.

그래서 카드 뒷면에 영수증을 투명 테이프로 잘 붙여 놨는데 며칠 지나서 보니 영수증의 잉크가 다 지워져서 거의 아무것도 읽을수가 없다. 깜짝 놀라서 영수증 내용 중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따로 적어두었다. 내용은 적어 뒀지만 살짝 불안하다. 로마는 뭐로 트집을 잡을지 종 잡을 수 없는 동네다.   
 
그렇게 며칠 지났는데 MyCicero에서 이메일이 왔다. 미국인 경험담을 읽고나서 그 사람 빙의해서 납세자 번호 없이는 못 사는지? 외국인은 납세 번호를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를 물었더니 답장이 온거다. 답변은... 1)납세 번호 없이는 구매 불가다. 2)아래 링크를 참조해서 납세 번호를 받아라. 그래서 그 링크에 들어가 봤다.

근데 거의 불가능할 것 같다. 먼저 거주 목적의 EU 시민이라면 입국심사할 때나 입국 후 경찰서에서 받을 수 있다. 아니라면 세무서를 찾아가야 하는데 EU 시민이면 세금계산서를 제출할 기관을 명시해야 발급해 준다고 한다. 이 문구 때문에 관광와서 발급 받으려는 EU 사람도 납세번호 못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EU 시민이 아닐 경우 여러개의 장황한 서류와 함께 거주 증명서(valid residence permit)를 제출하라고 한다. 아… 역시 관광객은 못사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는데, 마지막에 이런 문장까지 있다. EU 시민이 아니면 거주 증명이 있어도 왜 이탈리아에 머무르는지 소명해야 한다(Non-EU citizens must also prove that they have the right to stay, even temporarily, in Italy.)고... ㅋ

이걸 읽으니 그 미국 사람 열받은 얼굴이 떠 오른다. 그 사람 경험담에 자기는 이탈리아어를 잘 한다면서 자기의 언어 소통 능력이 문제가 아니라 이탈리아 공무원들 민원인 소통 능력과 태도 때문에 일이 안된다고 불평이 쓰여 있었다. 그 사람이 한 대화가 눈에 선하다.

먼저 ATAC 사무실: 표 파세요. 신청서 쓰세요. 썼어요. 서류 내세요. 여기요. 납세번호 쓰세요. 없는데요. 안 팝니다. 납세 번호 어디서 받나요? ...겨우 뭔지 알아내고 세무서 간다. 그 전에 출입국사무서나 경찰서에 먼저 갔을 수도 있다.

그 다음엔 세무서: 납세 번호 주세요. 신청서랑 서류 내세요. 굴욕과 비효율을 무한한 인내로 참아가면 이것저것 서류를 준비해서 완벽하게 제출한다. 왜 몇 달이나 로마에 있나요? 관광인데요. 그러면 번호 못 줍니다. 인내 폭발. 인터넷에 울분을 표출한다.

로마에서 좀 살아보니 여기 분위기가 선진국이기도 하고 옛날 우리나라 같기도 한 애매한 기분이 많이 든다. 어떤 건 참 구식이다. 화장실도 그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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