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에서 놀자!!
먼저 간 친구를 그리워한다. 본문
같은 해 대학에 입학해서, 마흔 명 남짓한 청춘들이 같은 과를 다녔는데, 그 중 한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2024.6.2., 일요일).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품에 안고 보니, 이 아이가 성인이 되어 앞가림을 할 때까지 나의 생존은 의무 사항이라는 무게감이 느껴졌다. 그래서 생명보험도 딱 그 나이까지 보장이 되는 걸로 가입했다. 내 기준으로 보면 친구는 의무 생존 기간을 넘겨서 살았지만 너무 짧다는 생각을 떨쳐 낼 수가 없다.
근엄한 얼굴이든 미소 띤 얼굴이든 대부분의 영정 사진은 그 사람 삶의 찰나를 보여주는데 지나지 않는데, 단정한 옷차림으로 환하게 웃고 있는 친구의 사진은 그의 삶을 온전히 압축해서 보여주고 있다. 늘 미소를 달고 다니던 친구였다. 이 글을 쓰면서 그의 찡그린 얼굴, 화난 얼굴을 떠올려 보려고 해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몸이 아파서 힘들 때, 고민 중인 문제가 잘 풀리지 않을 때 혼자 있는 표정은 좀 어두웠지만 누군가를 마주하면 또 애써 웃는다. 매사 흐트러진 모습도 거의 보여주지 않았다. 영정 사진과 그의 삶이 온전히 하나로 느껴져서 계속 물끄러미 바라보게 된다.
친구는 잔 정이 많았다. 그만큼 시시콜콜 친구들 일에 잔소리도 많았고, 내가 보기엔 수다스러웠다. 여자 형제가 있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왠걸 아들 사형제 중 막내다. 원래 타고난 기질 때문에 친화력이 높았겠지만, 막내라는 환경도 크게 한 몫 했으리라 생각한다. 태어나 처음으로 여자 애들과 함께하는 대학 생활이 무척이나 낮설고 어색했던 나는 여자 애들과 허물없이 지내는 친구의 친화력이 퍽이나 부러웠다.
해야할 일에 있어서는 교과서를 존중하는, 완벽을 추구하는 친구였다. 그런데 자기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그 당시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강의 빼먹고 유흥 즐기기 등)이라도 주위에서 부추기면 함께한다. 물론 동의하는 말과는 달리 표정에 바르지 않음에 대한 아쉬움, 후회 등이 살짝 묻어났다. 이런게 친구의 대학 생활 중에서 남 모르는 갈등과 어려움 중 하나가 아니었나 싶다. 일부러 같이 시간을 내어준 친구가 고맙고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까봐 한번도 이런 이야기를 꺼내진 않았다.
친구는 술이 잘 안 맞는 체질이라 쉽지 않았을텐데 기꺼이 술고래들과 시간을 함께했다. 몸이 힘들었겠지만, 영양가 없는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가끔 일그러진 세상에 분노하며 함께 했던 시간들이 즐거웠던 때가 더 많았을거라 믿는다. 꿔다논 보릿자루 같은 남자 동기들 중에서 공감 능력이 가장 도드라진 친구였다.
친구는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쳤다. 아마 강의실에서 학생들이 엉뚱하거나 이상한 질문이나 행동을 하더라도 웃으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고 학생들에게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고 했을 것 같다. 이건 오로지 나의 상상이지만,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장례식장으로 차를 몰고가면서 돌이켜보니 친구의 가족에 대해서 너무 모른다. 친구의 짝이 많이 아팠을 때 잠깐 힘들다는 이야기했던 것 말고는 떠오르는 게 없다. 서로가 서로의 가족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는데, 왜 그렇게 무심하게 살았을까? 이 글을 쓰면서 되돌아보니 기이할 정도다. 친구와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내가 기억하는 친구와 다른 이들이 기억하는 친구는 얼마나 같을까? 기억이란 게… 다르면 내가 맞다고 우기면 되지만, 별로 많지도 않은 친구에 대한 기억들이 많이 다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친구의 한결같은 미소와 바른 모습을 모두 같은 꼴로 기억하면 좋겠다.
한 손에 펜을 들고 환하게 웃으며 내게 다가오는 친구의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왜 이 모습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유행하는 짧은 동영상처럼 이 모습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친구야! 오늘 날이 무척 맑다. 네가 떠나는 길이 환해서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그 곳에서 잘 지내라.
자꾸 눈물이 나네.
왜 먼저 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