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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치의 의심도 없는 진화이야기 (Making of the fittest, 2006)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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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치의 의심도 없는 진화이야기 (Making of the fittest, 2006)

sealover 2009. 4. 1. 10:02

최근 도킨스의 책을 보면서 여기저기를 둘러보니 일반인을 대상으로 쓰여진 진화에 관한 이야기가 정말로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도 처음부터 책의 내용을 알고 본 책은 아니고 제목과 목차를 뒤적이다가 보게된 책인데 이사람의 다른 책 "이보디보, 생명의 블랙박스를 열다"라는 책을 꼭 봐야겠다.

이 책은 DNA를 가지고 진화의 증거를 설명하고 있다. 왜 어떤 DNA는 불멸이 되며 어떤 DNA는 금방 화석이 되어 버리는지를 DNA 복제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특징을 가지고 설명한다.

DNA에서는 복제오류가 항상 일어나며 그런 복제 오류가 자연에서 용납(선택) 되지 않을 경우 가차없이 제거되어 버리지만 조금, 아주 조금이라도 효용이 있다면 그리고 조금만 조건이 맞다면 후손에게 전달되는 이유와 방법을 설명해 준다.

이런 기본 원리는 무척 간단하지만 진화와 관련해서는 확률과 시간에 대한 이해가 필수이다. 보통 사람들이 잘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도 이런 시간과 확률에 대한 부분들인데, 이 책도 여러번 반복해서 설명을 하고 있다. 여기서 정리해서 제시하는 진화를 아래에 쓴다. 독자가 이 정도만 이해해도 이 책의 목표는 달성하지 않았나 싶다.

  1.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면
  2. 똑같거나 상응하는 돌연변이가 우연한 기회에 반복적으로 일어나며,
  3. 돌연변이의 운명(보존 또는 제거)은 영향을 받은 형질이 처한 선택의 조건들에 따라 결정된다.

그리고, 이 책에서 알게된 사실 중 흥미로운 것은 러시아의 리센코이다.

내가 속한 조직이 경계해야 할 러시아의 유전학계가 겪었던 일을 일부 발췌해서 적어 둔다. 

그리고, 보고 웃었던 재밌는 표현도 써둔다. "네 언니가 네 고모이면 네 아버지는 누구인가?" ㅋㅋ 증말 재밌는 이야기다. 생물의 유연 관계를 밝히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비유로 쓴 표현이다. 

264쪽 - 267쪽, 리센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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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센코는 춘화처리를 장려했고, 이어 오데사의 한 연구소에서 춘화처리를 위해 새로 만든 부서로 승진되어 갔다. 거기서 그는 춘화처리의 원리를 설명하는 이론을 세우기 시작했다. 리센코는 환경의 영향에 반응하여 식물이 유전적 변화를 일으켰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완전히 라마르크식 이론이었다. 생물이 사는 동안 획득한 형질을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다는 개념 말이다. 이 이론은 당시 소련의 정치이념에 부합했다. 자연과 인간이 역사나 유전의 제약을 받지 않으며, 바라는 방식으로 교정될 수 있다고 말해주었으니까.

하지만 리센코의 개념은 최신 유전학 지식을 무시한 것이었다. 이리하여 주사위는 던져졌고 리센코와 유전학자들 사이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그러한 유전학자들 가운데는 그의 스승이었던 바빌로프도 있었다. 이 갈등은 이후 20년간의 소련 생물학을 특징짓게 된다.

리센코의 명성은 계속 퍼져나갔다. 농업 인민위원들과 공산당 고관들은 자신들이 듣고 싶은 것만 들었다. 리센코의 부하들도 리센코가 듣고 싶어 하는 결과만을 말해야 한다는 것을 재빨리 눈치 챘다. 그의 지시 아래, 사전 연구 하나 없이 수많은 작물의 대규모 춘화처리가 계획되었다. 한 작물의 실패가 채 드러나기도 전에 다른 작물로 실험이 시작되었다. 그가 보고했던 긍정적인 결과들은 대개 작은 표본과 부정확하거나 잘못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으며, 대조군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의 ‘성공’은 유전학적 방법으로 수확량 향상을 꾀했던 육종가들을 유독 곤란한 처지로 몰아넣었다. 육종을 통한 작지만 꾸준한 발전은 당 지도부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그들은 즉각적이고 극적인 결과를 요구하고 있었다.

즉각적이고 ‘실용적인’ 결과를 요구했던 리센코 일파와, 초파리 같은 종으로 ‘순수한 연구’를 하고 있던 사람들 사이에는 긴장이 높아져갔다. 유전학은 소련 농업의 당면과제를 외면하고 있을 뿐 아니라, 타당성이 없고 심지어는 반동적이기까지 한 부르주아 과학이라고 매도당했다. 실제로 유전학은 자연과 인간에게 유전적 제약이 가해져 있음을 암시하고 있었으며, 이것은 소련의 정치철학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관점이었다.

리센코는 공산당이 아끼는 인사가 되었고, 당 지도자들과 자주 만났다. 1935년 크렘린에서 농부들에게 했던 한 연설에서 리센코는 이렇게 선언했다.

“과학계 안에서나 밖에서나 계급의 적은 영원한 적이다. 과학자라 하더라고 예외가 아니다.”

스탈린은 벌떡 일어나 박수를 치며 이렇게 소리쳤다.

“만세! 리센코 동지 만세!”

스탈린의 칭찬에 리센코는 기가 살아 더 과감해졌고, 유전학에 대한 그의 공격과 거부는 점점 더 심해졌다. 유전에 대한 리센코의 ‘새로운 이론’은 유전자와 자가복제물질의 존재 자체를 부인했다.

유전학자들과의 대립은 갈수록 노골적이고 빈번해지고 적대적으로 변했다. 공산당 지도자들도 추임새를 넣었다. 그들은 유전학을 파시즘과 나치즘의 망령과 결부 시켰다. 한 유명한 인민위원은 히틀러의 선전부서에 빗대 유전학을 ‘괴벨스 선전부의 하녀’라고 불렀다.

그러는 동안 리센코의 농업 계획들은 재앙에 가까운 결과를 냈다. 춘화처리한 밀의 수확량은 형편없었고, 채소 공급량이 대폭 줄었으며, 감자 프로그램은 실패했다. 작황 실패는 계속되던 식량부족을 악화시켰다. 유전학자들이 반격에 나섰다. “ 만일 최고연구원 리센코가 현대 유전학 원리에 좀더 관심을 쏟는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리센코가 유전학과 유전학 원리인 선택을 계속 무시하는 바람에, 유전학은 새로운 이론을 전혀 수혈받지 못하고 있다.”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1933년에 양 진영의 ‘공개’ 토론을 인가했다. 리센코의 옛 스승이자 지지자였던 비빌로프도 역시 몸을 사리지 않았다.

“리센코의 입장은 소련 유전학자들뿐 아니라 모든 현대 생물학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발전된 과학이라는 미명 아래, 우리는 19세기 초반과 중반에 나왔던 낡은 견해들로 돌아가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우리 유전학자들이 지지하고 있는 것은 놀랄 만큼 창의적인 작업, 정확한 실험, 소련과 외국 과학자들의 연구에서 나온 결과들이다.”

리센코는 대답했다.

“나는 멘델주의를 인정하지 않는다‥‥‥. 나는 멘델-모건주의자들의 유전학을 과학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철학자 파벨 유딘은 이렇게 거들었다.

“중등학교에서 유전학을 가르치는 것을 그만두어야 한다.”

이 만남이 있는지 한 달 뒤 스탈린은 바빌로프를 불러들였다. 바빌로프는 자기 연구의 과학적 바탕을 설명하려고 애썼지만, 스탈린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그를 해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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