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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 지는가? (How emotions are made, 2017/2017)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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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 지는가? (How emotions are made, 2017/2017)

sealover 2024. 5. 10. 17:36

재밌게 읽었다. 읽기 쉬운 건 아니다. 한 두번 더 읽어야 할 책이다.

인간이 평생 자기 뇌의 10%도 채 사용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래서 나도 어린 시절엔 뇌의 활용 범위를 확장하면 슈퍼 인간이 되지 않을까?하는 상상을 가끔했었다. 아마 이런 생각의 끝판왕은 뤽 베송 감독의 2014년 영화 <루시, Lucy>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재미있게 봤다. 영화는 현실을 잘 그려내면서 그럴듯한 내지는 있음직한 이야기를 풀어내거나, 아예 이 세상을 벗어난 황당한 설정 아래서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주제를 제시하면 잘 팔린다고 생각한다. 루시는 후자의 이유로 재밌게 본 사람도 있을 테지만 전자의 이유로 본 사람이 더 많았을 것 같다.

이런 오해는 뇌를 생각 또는 지적 활동을 위한 기관으로 한정하기 때문에 생긴다. 생물학 특히 진화론을 공부하면서 뇌의 기본 기능은 운동이고 부수 효과로 미적분을 한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다세포 생물의 중앙처리장치(뇌)는 1)감각기관을 통한 환경 자료 입력(숲 속에 뭔가 있다.), 2)자료 해석과 미래 예측(호랑이로 추정된다. 도망가자.), 3)예측에 대한 검증(진짜 호랑이인가? 어느 방향으로 이동하는가? 등)과 수정(호랑이가 확실하다. 회피 방향을 설정하고 뛰자.)을 계속 이어가면서 대응(대부분이 운동을 수반한다.)을 하는 형태로 작동한다.

단순하고 자동화된 과정으로 여겨지는 걷기가 감각기관 입력과 근육 활동 출력을 통합한 아주 복잡한 뇌 활동의 산물이라는 사실이 이제는 잘 알려져 있다. 물론 걷기의 자료 처리 과정은 굳이 애쓰지 않는 다음에야 의식의 영역으로 잘 떠오르지 않고, 거의 백그라운드 작업으로 처리된다. 하지만 본인이 원하면 미세한 다리 근육들의 움직임, 걷고 있는 길의 울퉁불퉁한 정도에 대한 입력, 마주오는 사람들의 운동 방향 입력과 예측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래서 사고 과정에만 사용되는 뇌가 10% 이하일지 모르지만 운동과 예측을 위해 뇌를 충분히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칼 세이건이 1978년에 쓴 <에덴의 용, Dragons of Eden> 제3장에서 이야기하는 ‘삼위일체의 뇌’라는 개념은 아직도 빈번하게 회자되고 있는 뇌에 대한 무척 큰 또다른 오해 중 하나다. 저자는 폴 매클린의 연구를 인용하며 인간의 마음은 1)관습적, 공격적, 위계적 행동을 지배하는 파충류의 뇌, 2)정서를 지배하는 변연계, 3)깊이 있는 사고와 반성과 추론 기능을 담당하는 신피질의 세 부분이 대립과 갈등 그리고 연합으로 작동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동물 진화의 여정에서 파충류의 뇌부터 순차적으로 뇌의 각 부분이 더해지면서 신피질이 극대화된 인간에 이르러 두뇌 진화의 정점에 이르렀다는 설명은 다윈부터 이어진 전통적인 결정론적 관점이다.

이러한 시각에 과학의 권위를 더해준 결정적 사건은 브로카 영역(Broca’s Area)*의 발견이다. 뇌가 거대한 네트워크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네트웍이 파충류 영역 또는 브로카 영역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오해는 최근의 과학적 발견과 성과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두뇌 영역이 폭넓게 몇 개의 영역으로 구분되기는 하지만 칼 세이건이나 <라마찬드란 박사의 두뇌 실험실: 우리의 두뇌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가?, 2016>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세세하게 별도의 영역이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두뇌는 거대 네트웍을 기반으로 한 가소성과 다양성이 기본이다.

  • 315쪽 각주 참조. “브로카 실어증에 시달리는 상당수의 환자는 건강한 브로카 영역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반대로 브로카 영역이 손상된 사람의 약 절반은 브로카 실어증을 보이지 않는다. 브로카 영역의 또는 더 적절한 명칭인 외측 전전두엽 피질의 기능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이 영역이 언어 산출이나 문법 능력 또는 더 일반적인 언어 처리를 전문적으로 담당한다고 믿는 과학자는 거의 없다. …”

이렇게 뇌가 예측 운동을 위한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라는 사실을 인정하면, 운동으로 뇌를 건강하게 만들어 두면 두뇌의 부수 기능인 공부에도 큰 효과가 있을 게 분명하다. 이런 부분은 <운동화 신은 뇌 (Spark Your Brain, 2009)>에 잘 나와 있다. 이 책의 영향으로 두뇌의 기본 기능은 운동이니 몸을 움직여서 덩달아 마음도 건강하게 만들자는 자세로 잘 지내왔다.

그런데 이 책의 내수용(interoception)* 부분을 읽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생물체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잡아먹히지 않고(포식자 회피) 잘 먹어야겠지만(사냥, 채취 등), 먹이의 소화와 호흡, 혈액 순환(영양 공급 등)과 호르몬 분비 등 내분비계 조절에 비하면 운동 또한 사소한 두뇌 활동이다. 이 당연한 생물학적 기본 원리를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잠을 충분히 잘 자는 일(신체 에너지 예산 균형 유지)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지만, 행복한 인생의 굉장히 결정적 요소라는 사실을 이 부분을 읽고 확실하게 다시 깨달았다.

  • 125쪽 본문 참조. “단순한 쾌감과 불쾌감은 내수용 interoception 이라고 불리는 당신 내부의 지속적인 과정에서 비롯한다. 내수용은 당신 내부의 기관과 조직, 혈액 속 호르몬, 면역체계 등에서 발생하는 모든 감각에 대한 당신 뇌의 표상이다. 바로 이 순간 당신의 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생각해보라. 당신의 내부는 계속 움직이고 있다. 심장에서 보내는 혈액은 정맥과 동맥을 힘차게 흘러가고 있다. 허파는 계속 공기로 채워졌다 비워진다. 위에서는 음식이 소화되는 중이다. 이런 내수용성 활동을 통해 쾌감과 불쾌감, 평온함과 예민함, 그리고 완전히 중립적인 느낌 같은 기본 느낌들이 산출된다.

저자는 운동 예측 및 반응을 하는 것처럼 신체 에너지 수요 예측과 조절을 하는 것이 우리 두뇌의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한다. 이 조절 임무의 성공과 실패가 만들어 낸 내수용이 정동, affect에 영향을 끼쳐서 구성하는 감정이 인간의 행동에 결정적 또는 큰 영향을 끼치고(정동실재론, affective realism) 심지어 각 개인 자체를 만들어 낸다는 게 이 책에서 이야기 하는 큰 흐름이다. 그리고 감정이 개인의 예측으로 구성된 사회적 합의이고, 정신 및 신체 활동의 근간이 된다는 이야기가 또한 중요한 주제다. 이 부분은 불교의 여러 가르침과도 상당히 맞닿아 있다. 복잡한 용어는 몰라도 된다. 간단하게 쓰면 몸이 불편하면 마음도 불편하다.

하지만 내가 중요하게 느낀 부분은 이렇다. 두뇌 활동을 1)사고(이성), 2)운동, 3)신체 에너지 조절(내수용)로 나눈다면 활동 비중은 3)이 제일 크고 2)와 1)이 그 뒤를 따른다. 그런데 신체 에너지 수요 예측이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숲 속에 호랑이로 의심되는 물체가 감지될 경우 코티솔을 분비하고 최대 에너지 수요에 대비하고, 직접 운동으로 이어지면 신체 에너지 수요는 평형 상태에 도달한다. 하지만 현대인은 아무런 신체 활동이 예상되지 않는 정신적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육체적 최대에너지 수요에 대응하는 것과 동일하게 반응한다. 이러면 준비했던 여분의 에너지 과잉으로 신체 예산 조절 불균형과 불쾌한 정동을 유발한다. 쉽게 말해서 기분이 나빠지고,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우울증이 된다.

저자는 불안과 우울증이 스트레스, 과거의 나쁜 기억의 축적 등이 유발한 신체 예산 조절 불균형 및 예측 장애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한다. 사실 거의 그렇다고 확신하는 것 같지만 과학적 증거가 아직 없어서 ‘추정’이라고 조심스럽게 이야기 한다. 나는 이 추정에 깊이 동의한다. 그렇다면, 저자도 이야기 하고 있지만, 하나의 네트워크로 구성된 두뇌의 ‘신체 에너지 조절’과 ‘사고’를 바르고, 기분좋고,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 스스로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활동이 ‘운동’이다. 명상으로 운동과 동일한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겠지만 보통 사람들에게는 운동이 더 편하다.

여러가지 이유로 몸을 움직이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이 책이 ‘왜 그렇지?’라는 물음에 굉장히 깔끔한 답을 던져준다.

지금까지 알았던 통념을 깨는 내용이 많은 책이다. 하지만 그래서 더 설득력이 높다.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 2017년에 출판된 책을 같은 해에 바로 번역한 점이 특이해서 출판사를 검색해보니 별 정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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