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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자!

[독후감]국화와 칼(1946/2008 문예출판사)

sealover 2019. 8. 13. 15:10

예전에 읽고 "일본인이 보여주는 이중성은 윗 사람의 명령에 대한 맹목적 복종 때문이다." 정도로 책의 내용이 기억에 남아 있었다. 책 제목도 그래서 국화와 칼을 대비시켰다고 생각했다. 옮긴이가 이런 나의 기억이 이 책에 대한 오독이라고 콕 찍어서 이야기하고 있다. ㅋ

새로 읽었으니 느낌을 다시 써야죠... ㅎㅎ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 역시 목차만한 게 없다.

  제1장 연구과제: 일본
  제2장 전쟁 중의 일본인
  제3장 각자 알맞은 자리를 취하기
  제4장 메이지유신
  제5장 과거와 세켄에 빚진 채무자들
  제6장 <만 분의 일>의 온가에시
  제7장 <기리보다 쓰라린 것은 없다>
  제8장 오명 씻어내기
  제9장 닌죠의 세계
  제10장 덕의 딜레마
  제11장 자기 훈련
  제12장 어린아이는 배운다
  제13장 패전 후의 일본인

저자는 일본인의 특징을 이렇게 요약한다. 자기에게 주어진 자리, 기무(한자는 의무, 義務)를 잘 지킨다. 나아가 그 자리를 지키려고 무던히 애쓴다. 이런 자리지킴에 대한 집착이 확장되어 세켄(한자는 세간, 世間)의 평판이 나를 규정한다. 즉 합당한 자리를 지키고 그에 맞는 행동을 하기 위해 신경을 쓰는 수준을 넘어선다는 이야기다. 그러지 못했을 때 하지(한자는 치, 恥)를 느낀다. 이 부분이 다양하게 확장되어 온가에시(온의 한자는 은, 恩. 은혜 갚음과 비슷하지만 다르다)와 기리(한자는 義理지만 자존심과도 유사하고 딱히 떨어지는 말이 없다.)로 이어진다. 자기 이름에 대한 기리를 지키기 위해, 모욕을 받았다고 느끼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의 저항으로 복수한다. 그리고 이런 다양한 특징은 각각 구분되어 공존한다. 이 정도까지가 서론이다.

이제 제10장의 본문을 읽어보자.

265쪽 일본인은 미국인처럼 어떤 절대적인 지상명령이나 황금률에 호소하지 않는다. 어떤 행위의 승인은 그것이 행해지는 세계와 상대적인 관계에서 이루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예컨대 일본인은 '효를 위해' 행동할 때와 단순이 '기리를 위해' 혹은 '진의 영역에서' 행동할 때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적어도 서구인에게는 그렇게 비친다) 행동한다. 또한 일본의 법도는 각각의 세계에서 그 '세계' 속의 조건이 바뀌면 그에 따라 아주 다른 행동을 요구한다. 가령 주군에 대한 가신의 기리는 주군이 가신을 모욕하지 않는 한 최고도의 충성을 요구하지만, 일단 가신이 모욕을 받게 되면 모반을 일으켜도 아무 상관이 없다. 1945년 8월까지 충의 가치관은 일본 국민에게 최후의 한 사람까지 적에게 항전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천황이 라디오 방송을 통해 일본의 항복을 고함으로서 충의 요구내용 변하자, 일본인은 그때까지와 정반대로 외국인에게 협력하는 태도를 보였다.

여기서 저자는 서양인이 일본인의 행동을 이해하기 힘든 이유로, 그들의 정의 내지는 가치가 마땅히 인생 전체를 통해서 이루거나 추구해야 할 일관된 이상이나 가치에 있지 않고, 격이 낮고 현실적인(이 표현을 애써 안 썼지만) 다수의 가치(기무, 온, 기리 등)에 좌우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과연 일본만 그럴까? 누구나 그렇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물론 일본이 유난하기는 하다.

여기까지의 분석에 일본 사람들의 교육을 추가해서 일본을 해석하고 패전 후의 일본에 대해서 쓴다. 1900년대 초반의 민주화 된 일본?의 선거에 대해서 쓴 본문을 읽어보자.

391쪽, 각 번이나 정당의 열렬한 추종자들은 새로운 정치를 단지 새로운 형태의 싸움, 즉 지도자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충성의 싸움으로 밖에는 이해하고 있지 않았다.

결국 일본의 정치는 지난 천 년간 변화가 없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가 너무 소름끼친다. 왜 일본의 선거에서 정치 세습이 일어나고 인물 변화가 없는지 잘 알려준다. 이걸 바탕으로 역사를 다시 읽으면... 1592년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 편에 서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반기를 들었던 도자마 다이묘(大名, 지방을 다스리는 영주, 도쿠가와 편은 후다이 다이묘)들이 다시 정권을 잡은 사건이 1868년 메이지 유신이기 때문에 이들은 정한론(한국 정벌론)에 목을 매고 끝내 실천에 옮긴다. 2차 대전이 끝났지만 일본인들이 추종하는 권력 상층부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내가 알고 지내는 따뜻하고 친절한 일본 보통 사람들은 이런 지도자의 명령에 그렇게 잘 따른다. 일본, 일본 사람과의 관계를 깊이 생각하게 된다. 머리가 복잡해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저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401쪽, 만일 일본이 군국화를 국가예산에 포함시키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경제적 번영의 기틀을 마련해 아시아의 통상에서 중심적인 나라가 될 것이다. 또한 그와 같은 평화 의 이익에 입각해 경제를 발전시킨다면 국민 생활수준도 크게 향상될 것이며, 평화로운 나라 일본은 향후 국제적으로 명예로운 지위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미국이 일본 내에 평화 세력을 지지한다면 이와 같은 계획의 실현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Ruth Benedict, 어린 시절 아버지의 죽음, 이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청각 장애, 난임, 이혼, 교수 임용 차별을 겪으며 고통 받았던 그녀는 일본과 사랑에 빠졌나 보다. 이 정도로 깊이 연구한 주제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을테니 그녀의 사랑이 충분히 이해된다. 그녀의 예언대로 일본은 부유한 나라가 되었다.

1940년 독일 나치의 인종차별주의에 반대하는 「인종: 그리고 과학과 정치」를 저술한 그녀가 관심없었던 주제인 '조선'의 후손인 나는 궁금하다. 십 만명이 넘는 사람의 코와 귀를 베어내서 집으로 들고가고, 다양한 방법으로 살아있는 사람을 죽여가면서 실험과 기록을 하고, 재미 또는 병사들 훈련을 위해 살아있는 사람의 목을 베고, 성별이 여성인 사람을 군수 물자로 분류, 보급하여 물건으로 다루다가 퇴각 등 급하게 이동할 때에는 모두 죽여서 폐기해 버리는 이런 행위는 어떻게 설명이 될까?

이런 일들이 닌죠(한자는 人情, 이 책에서는 쾌락과 유사한 개념으로 서술한다. 본문 참조.)로 설명이 될까? 아니면 조선에게 받은 모욕이 너무 뿌리 깊어서 '이름의 기리' 때문에 그렇게 잔인하게 행동했을까? 그녀가 살아 돌아와서 다시 이 주제를 연구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할까?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되면 결과도 수용이 될까? 그녀의 의견이 무척 궁금하다.

241쪽, 일본의 도덕률이 그처럼 관대하게 오관의 쾌락을 허용하고 있는 이중성은 의외라는 느낌을 준다.

분명한 사실 하나. 100년 전 정한론자들을 할아버지라 부르며 그 무릎에서 놀던 아이들이 지금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이다. 정신 바짝 차리자.

사진은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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